꽤 오래 에버노트를 구독했습니다. 몇 년이 지났는지 세어보지 않아도 될 만큼요. 처음엔 개인 메모 용도로 시작했다가, 강력한 동기화 기능에 이끌려 회사 업무까지 끌어들이게 됐습니다. 거래처 담당자들이 보내오는 이메일, 도면, 발주서, 거래명세서를 한 곳에서 관리하는 허브로 쓰기 시작한 거예요. 그때만 해도 나름 최선의 선택이었습니다.
그런데 데이터가 쌓일수록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분명히 뭔가를 열심히 기록하고 있는데, 이게 정말 효율적인 건지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에버노트만으로는 부족했다
에버노트는 메모 도구로는 훌륭합니다. 그런데 업무가 복잡해지면서 메모 수준을 넘어서기 시작했어요. 거래처가 늘어날수록 효율은 오히려 떨어졌고, 체크리스트 같은 기본 도구에만 의존하다 보니 오타가 생겨도 뒤늦게 발견하거나 아예 묻혀버리는 일이 잦았습니다. 특히 날짜 데이터는 검색도 집계도 안 됩니다.
가장 큰 문제는 메모를 아무리 정성껏 해놔도 "이번 달 현금흐름이 얼마야?"라는 질문에 바로 답할 수 없다는 거였습니다. 기록은 잘 되는데, 집계와 분석이 안 된다는 한계가 너무 명확했습니다.
엑셀도 답은 아니었다
당연히 엑셀도 함께 썼습니다. 그런데 이건 다른 문제가 있었죠. 파일이 월별·거래처별로 분산되었고, 어느 파일이 최신인지 파일명에 구분하기 전엔 알기 힘듭니다. 공유도 불편하고, 다른 기기에서 최신 버전을 보려면 직접 파일을 전달해야 합니다. 수식 오류가 생겨도 언제 생긴 건지조차 알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죠.
엑셀 자체는 강력합니다. 소규모 사업장에 없어선 안 될 도구인 건 사실이에요. 그런데 점점 정교해지는 업무를 따라잡기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ERP를 도입하자니 비용이 너무 큽니다. 소기업 입장에선 현실적으로 검토 대상이 되기 어렵죠.
| 항목 | 에버노트 | 엑셀 |
|---|---|---|
| 데이터 집계·분석 | 어려움 | 가능 |
| 실시간 공유 | 가능 | 불편 |
| 버전 관리 | 자동 | 파일명 직접 관리 |
| 구조화된 데이터 관리 | 한계 있음 | 가능 |
| 자동화 연동 | 제한적 | 매크로만 가능 |
노션과 구글 시트로 시스템을 다시 짰다
결국 노션과 구글 시트를 주축으로 시스템을 다시 짰습니다.
노션의 가장 큰 장점은 저장 버튼이 없다는 것입니다. 자동 저장이 되고, 어디서든 같은 파일에 접근할 수 있어요. 단순한 메모를 넘어서 데이터베이스처럼 구조화해서 쓸 수 있고, 페이지 안에 페이지를 만들어 거래처별·프로젝트별로 관리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API도 제공하기 때문에 외부 도구와 연동하거나 자동화 흐름을 만들어볼 수도 있어요. 무료 플랜만으로도 소규모 사업장이 쓰기에는 충분합니다.
구글 시트는 엑셀과 거의 동일한 수식 환경이지만 클라우드 기반이라 파일 관리가 훨씬 단순합니다. 여러 사람이 동시에 편집할 수 있고, 구글 계정만 있으면 무료로 쓸 수 있어요. 앱스크립트를 쓰면 엑셀 매크로보다 유연한 자동화도 구현됩니다.
저희 사업장 방식에 맞는 견적 관리 시스템을 직접 만들어볼 수 있다는 것, 그게 이동을 결심하게 만든 이유였습니다. 물론 완전 자동화가 바로 되는 건 아니지만, 이전보다 훨씬 긴밀하게 돌아가는 시스템을 갖게 됐어요.
에버노트의 역할을 분산했다
지금은 에버노트 구독을 끊을 예정입니다. 숫자 데이터는 노션과 구글 시트에서 관리하고, 도면·계약서·파일은 드롭박스나 원드라이브에 보관합니다. 에버노트가 담당하던 역할이 분산된 셈이에요.
처음엔 어색했지만, 지금은 각자 역할이 명확해서 오히려 편합니다. 하나의 도구가 모든 걸 하려다 보면, 결국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못 하게 되더군요.
이 과정에서 얻은 교훈
시스템을 갈아엎으면서 몇 가지 배운 게 있습니다. 먼저, 도구보다 시스템이 먼저라는 점. 도구를 바꿔도 체계가 없으면 같은 문제가 반복됩니다. 노션으로 옮겨도 메모만 쌓으면 에버노트와 다를 게 없어요.
다음으로, 완벽한 설계보다 시작이 중요하다는 점. 처음부터 완벽하게 만들려다 보면 아무것도 못 합니다. 일단 쓰기 시작하고, 쓰면서 고쳐나가면 됩니다. 저도 처음 노션 데이터베이스 만들 때 한참 헤맸지만, 직접 부딪히며 배우는 게 가장 빨랐어요.
마지막으로, 자동화할 수 있는 건 자동화해야 한다는 점. 반복 작업에 매주 몇 시간이 들어가는지 계산해보면 자동화의 필요성이 훨씬 명확하게 보입니다.
에버노트와 이별하는 게 아쉽긴 했습니다. 몇 년을 함께한 도구니까요. 하지만 더 나은 체계를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실제로 노션으로 만들어본 견적 관리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 이어지는 글: 노션 견적 관리 시스템, 사장님이 직접 만든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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