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코딩을 모릅니다. 그런데 회사 문서 정리 자동화 도구를 제 손으로 고칩니다. 새로운 고지서가 들어와도, 서류 양식이 바뀌어도요. 비결이 대단한 건 아닙니다. 처음 만들 때 규칙을 코드 속에 숨기지 않고 제가 읽을 수 있는 표에 꺼내 놓았을 뿐입니다.
자동화보다 무서운 건 유지보수였습니다
스캔한 서류를 AI가 알아서 분류해 주는 시스템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예전에 적었습니다. 그때 솔직히 걱정이 하나 있었어요. 만드는 거야 AI한테 말로 시키면 되는데, 나중에 고칠 일이 생기면 어쩌나. 새 거래 은행이 생기고 고지서 양식이 바뀌는 게 사업장의 일상이니까요.
그때마다 AI를 붙잡고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야 한다면 그건 자동화가 아니라 새 숙제입니다. 사실 자동화 도구가 버려지는 건 못 만들어서가 아니라 못 고쳐서인 경우가 많더라고요. 처음 만든 사람만 고칠 수 있는 도구는, 그 사람이 잊는 순간 같이 죽습니다. 그런데 그 도구를 만든 사람이 저고, 저는 코딩을 모릅니다. 그래서 만들 때부터 조건이 하나 필요했습니다.
규칙을 코드가 아니라 표에 뒀습니다
도구를 만들면서 AI한테 한 가지를 요청했습니다.
지금 그 규칙표는 대략 이런 모양입니다.
| 유형 | 예시 | 처리 방식 |
|---|---|---|
| 제거형 | 전기·수도 고지서 | 안내문 면은 버리고 청구서만 월별로 저장 |
| 정렬형 | 카드 명세서 | 전부 보존하고 표지→상세 순서로 정리 |
| 통째 보존 | 규칙 없는 기관 | 손대지 않고 그대로 — 안전 우선 |
AI는 일할 때마다 이 표를 읽고 움직입니다. 그러니 새 고지서가 들어오면 제가 할 일은 표에 한 줄 추가하는 것뿐입니다. "이 기관 서류는 정렬형으로" 하고 말하면 AI가 그 줄을 써 넣고, 다음부터는 그 규칙대로 돌아갑니다. 판별에 쓸 키워드는 실제 스캔본을 한 번 같이 보고 정합니다. 프로그램을 뜯는 게 아니라 문서를 고치는 일이라, 코딩을 모르는 저도 무슨 규칙으로 돌아가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승인할 수 있습니다.
표에 한 줄이 실제로 늘어난 날
이 방식의 덕을 제대로 본 날이 있습니다. 몇 년치 서류를 한 번에 스캔했더니 분류가 엉켰습니다. 알고 보니 옛날 서식은 안내문이 거래 내역과 같은 면에 붙어 있어서, 규칙대로 안내문 면을 빼면 내역까지 같이 날아가는 구조였어요. 책상에 앉아 규칙을 설계할 때는 상상도 못 한 경우였습니다.
그날 표에 "옛날 서식은 통째 보존"이라는 한 줄이 추가됐고,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프로그램을 고친 게 아니라 표를 고친 겁니다. 저는 그 한 줄이 맞는지만 읽고 확인했고요. 규칙은 책상이 아니라 실제 서류가 만들어 준다는 것도 그날 배웠습니다.
판단은 눈으로, 실행은 손으로
이게 가능한 건 도구의 구조 덕분이기도 합니다. AI가 서류를 눈으로 보고 "이건 몇 월 청구서, 이 면은 안내문" 하고 판단하면, 실행은 별도의 손이 그 판단대로 파일을 만들고 옮깁니다. 판단과 실행 사이에 계획서가 한 장 끼어 있어서, 잘못돼도 파일이 움직이기 전에 잡을 수 있습니다.
저는 코드는 못 읽습니다. 하지만 계획서와 규칙표는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검증이 제 몫으로 남는 구조인 거죠. 도구가 어떻게 도는지 하나도 모른 채 결과만 받는 것과, 규칙을 내 눈으로 읽고 승인하는 것은 마음가짐부터 다르더라고요.
도구를 쓰는 것과 부리는 것의 차이
자동화를 도입하실 때 저처럼 코딩을 모르신다면, 이것 하나만 요청해 보세요.
도구를 쓰는 것과 도구를 부리는 것의 차이가 거기서 갈리는 것 같습니다. 규칙이 코드 안에 있으면 저는 평생 손님이지만, 표에 있으면 주인 노릇을 할 수 있으니까요. 만드는 데 걸린 시간보다 이 원칙 하나가 도구의 수명을 정하는 것 같습니다. 새 고지서가 오면 또 한 줄이 늘어나겠죠. 그렇게 표가 자라는 걸 보는 재미도 은근히 있습니다.
스캔 문서를 AI가 분류해 주는 시스템을 처음 만든 이야기는 종이서류 스캔 정리 후기에 적어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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